2009년 5월 21일 목요일

겐지 이야기 천년기 genji

 

 

감독 : 데자키 오사무

원작 : 무라사키 시키부

작화 : 스기노 아키오  

각본 : 데자키 오사무 / 콘파루 토모코

제작 : 도쿄무비신사(TMS)/데츠카 프로덕션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겐지 이야기를 읽은지 좀 되었다. 아 가물거려. 그닥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데 기억은 잘 안 난다. 겐지 모노가타리보담은 그 당시 같이 읽었던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를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길고 험난한 겐지 모노가타리보담야. 겐지 이야기 자체가 무진장 황당해서 그런건지도. 읽으면서 구운몽이 은근슬쩍 생각이 난 건 할렘때문이었던겔까.

 

 

겐지 이야기는 문체 자체도 상당히 고풍스럽고 유려하다. 그래봐야 외국인인 내가 타국의 고문장, 그것도 겨우 해석본으로 대하는데 얼마나 이해를 하겠냐만은 읽고 있으면 문어체의 우아함과 상징적 비유로 종종 오호라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내용의 막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의 화사한 문체는 보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물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내에서 말이다. 사실 현대어도 아니고 고문이다 보니 내용 이해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아 뭐 그런건 대강대강 끼워맞추기를 하면 크게 상관은 없지만. 실제적으로 겐지이야기가 가진 역사적 가치는 겐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내용도 물론 중요하긴 하다만-헤이안 시대의 풍습을 이만큼이나 기록한 책이 없다는 것이겠지. 이론으로 일본고대사를 접했을때의 추상적인 개념을 겐지이야기나 마쿠라노소시를 읽음으로 해서 좀 더 형상화를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헤이안 시대의 복장은 물론이고, 생활상, 귀족들의 연애사, 하다못해 관직명까지 외우는건 아니지만 이해하는데 꽤나 도움을 주었다. 그게 생각보다 대단한 거여서 나에게는 헤이안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막부에 대해서는 진짜 기본적인 내용밖에 모른다는거. 확실히 이런 책 덕택에 헤이안시대나 막말-메이지시대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문장의 위대함이어.

 

 

 

(꼬맹이 겐지가 입은건 스이칸.  그리고 귀족아가씨들의 기본 의상 여방장속)

 

 

 

내용도 중요하다 했지만 내용에 주목해서는 안 된다. 내용이야 아침드라마나 심야드라마에 나올법한 막장인 내용으로 가득하니까. 그건 겐지이야기 천년기를 보면서도 꼭 되새김질 해야 할 일이니. 첫번째는 겐지 이야기의 감독이 누구인지 봐야 할 일이다. 겐지이야기를 선택할 때 염두해 둔 부분이 영상과 재연성이었는데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명감독이라고는 하나 현 시대에 감각적이고 통통 튀는 영상들의 주류에서 얼마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감독 본인은 요즘 나오는 모에물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겠다 선언했는데 그건.... 감독이 만들고 말고 할 게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선이 굵고 역동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던 감독이 어느순간 모에물을 만들리가 없잖습;;; 데자키 오사무의 기법이 확실히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지 괜찮은 평을 들어도 잊혀지기 쉽상인데 겐지이야기같은 고전물에서 의외로 잘 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오히려 기대감.

 

 

 

위에서 오사무 감독이 좀 오래된 감독이다 보니...보다는 성향이 그러하다 보니 보면서도 아 촌시러 이런 부분은 없잖아 있다. 특히나 한 회당 한번씩 나오는 정사씬을 표현하는 부분이라던가, 인물들 개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부분이라던가. 내가 봐도 손발이 오글오글거리는 부분이 많긴 하더라. 잘 어울리고 잘 뽑아내과 화려하고 유려한것과는 별개다. 아 손발 오글오글. 확실히 정통 고전이다 보니 말투가 문제가 아니라 대사도 가끔씩 벅벅 긁고 싶다. 각오는 하고 봤지만 각오 정도로 될 일이 아닌걸.

애니를 볼 때 몇몇 빼고는 성우에 대해서 전혀 사전지식 없이 본다만 이번만큼 흠칫한 적이 있을까. 겐지이야기를 보기 직전에 약장수 아니지 모노노케를 끝낸 상태라 사쿠라이 타카히로의 목소리가 적응이 안 된다거나 오랫동안 긴씨(+가끔씩 듣는 쿈)에 소금 절이듯 절여 살다 보니 중장의 목소리에 비실비실 웃는다거나. 테라에를 보면서 적응기를 거쳤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쩜 좋니 스기타씨. 사쿠라이의 목소리는 모노노케에서 헤어나질 못했으니까 적응기가 필요하다 셈 치고. 의외로 유약한 행운청년인 히카루겐지의 목소리와 잘 매칭된다. 하긴 내가 막귀인데 목소리가 뭐가 필요할까. 연기만 하면 되는 것을. 이런 막귀인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스기타.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이 사람 목소리는 다른 성우들보다 더 굵은데다가 어투가 원래 그렇게 독특한건지 아니 테라에나 X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지도 않은거 같은데 요새 주욱 맡은 역이 그래서 그런건지 진지하게 가도 어째 장난스럽게 들린다. 그러니까 확 들린다고 해야 할까. 모노노케에서 사쿠라이와 미도리카와가 같이 나온 편이 있는데 둘이 같이 놓고 보니까 다르게 들리는거지 따로 놓고 구분하라면 나 또 구분 못하는데 스기타는 적어도 그런건 없어 보인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가리기누)

 

 

작화를 스기노 아키오가 맡았는데 확실히, 확실하게 요즘 그림체가 아니다 보니 그림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처음에 아미노 요시타카가 원화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거 같고 아사키 유메미시의 그림에서 작화를 따 왔다고 하기에는 선이 굵고. 스기노 아키오의 그림체라고 하기에도 묘하다. 아 진짜 정말 처음 봤을때는 오카노 레이코의 그림인줄 알았다. 작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호)불호가 많은데 나는 그닥 심각하진 않았다. 후반부로 가니 오히려 다른 그림체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헤이안 특유의 화려함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특히나 여자들의 그림체는 어방장속과 함께 보는 즐거움이 있다. 헤이안시대가 복장뿐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일본에서 가장 화려할 때이니까 작화와 어우러져서 굉장하다. 작화가 딱히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겐지 이야기에서 이 작화 이외에는 상상이 어려워 이 정도. 만일이지만 미즈노 토코가 맡았다면 작화는 좀 더 볼만했어도 겐지이야기가 순식간에 물에 동동 떠 버릴정도로 가벼워 보였을게다.

 

 

(속대. 문인복장과 무인복장)

 

 

그런데 문제는 헤이안이 화려하다 보니까 화려하게 표현한건 좋은데 가끔 과유불급의 장면들이 눈에 띄여서 문제다. 11편 중에서 딱히 확 들어오는 부분은 없어서 어디다라고는 말은 못하겠는데 너무 화려해서 눈이 아프다 싶은 부분도 있었거든. 화려한 건 좋은데 가끔은 절제해야 하지 않겠나 싶은게. 거기다 너무 역동적이어서 섬세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망점. 내가 외국인이니까 헤이안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냐만 이렇게 화려하기만 한 시대가 아닐텐데. 화려하고 섬세하고 유한 일본에 두번 없을 시대인데 좀 더 여성적으로 그려주었으면 어떨까 아쉽다. 나도 눈요기 하자고 본 거니까 그런건 있어야지.

 

 

(노시와 여방장속, 툇마루. 툇마루에서 술 먹는게 헤이안 기족들의 주 취미중 하나였단다?)

 

 

17세 이상, 그러니까 겐지이야기는 성인등급을 받고 심야방송에 방송을 했다. 한국에서 본 겐지이야기야 이게 대체 뭐냐는 말이 나오지만 일본에서 겐지는 또 다를테니까.... 역시나 심야주제에 시청률 꽤 좋다. 그 당시의 연애관을 지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새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은 굉장하게 골때리지만 사실 여어와 겐지는 단순히 왕의 후궁과 왕자 아니었던감. 우리가 이해하고 말고의 범위가 아니라 그 시대 연애상이 그러한걸. 문화와 역사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도 만드는거라. 겐지 이야기는 딱 그런듯.

 

 

(역시나 12장 여방장속. 옆에는 세장인거 같은데 확인불가. 스쳐 지나가는 거라 세장일까 아닐까는 잘...;;)

 

 

 

 

댓글 2개:

  1. @Blueshine - 2009/05/22 22:53
    일본 전통 의상은 헤이안 시대가 젤 화려하고 볼만하지. 이때 의상이 당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통일 신라나 고려대 의상이랑도 좀 흡사해. 특히나 여자들 의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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