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1일 월요일

망량의 상자

 

 

 

책에서 한번 적고 여기서도 한번 적고 두 번을 적는구만.

 

감독 : 나카무라 료스케

원화 : CLAMP

원작 : 쿄고쿠 나츠히코

각본 : 무라다 사다유키

제작 : 매드하우스

 

 

쿄애니가 미연시 및 미소년 수집가로 급상하고, 선라이즈가 메카닉의 총본산으로 세력을 떨칠 때 매드하우스는 섬세한 원작을 살려내는 수준급 제작사로 이름을 날린다. 곤조가 흔들리고 쿄애니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도 선라이즈와 매드하우스의 양분은 흔들리지 않을 듯. 물론 지존은 지브라고;

망량의 상자가 애니화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충격이란. 여기도 적어놨었나? 책에 간단하게 감상 적을때 적었나? 아 그럴거다. 여튼간에 망량의 상자를 영화화했다는것도 놀랍지만 저걸 애니화하겠다고 하다니. 거기다 원화는 클램프? 뭔가 매칭이 안된다. 화면에 가득찰 교고쿠도의 자막은 어쩔까 싶을 따름이었다. 대체 저 난감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다는건지 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어라 제작사가 매드하우스네. 딱히 제작자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건 아니지만 나나라던가, 천년여우라던가 파판에 무엇보다 몬스터에 기대를 걸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고 싶었다. 상상 이상으로 잘 뽑아내는 곳이니까.

 

 

내가 클램프식 그림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카드캡터 사쿠라를 끝으로 더 이상 만화는 접하질 않아서 아 놔 클램프래 클램프 이런 반응이었다고. 애니의 초동이 올라왔을때도 이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까지 고민했지만. 저 분위기에 클램프 작화가 어울리긴 할까나.

 

 

 

어...어라...어라...어라? 어라라라라?

나의 에노키즈는 이렇지 않아!!!!!! 이건 미소년이..이잖? 이잖습?

가 아니라 에노가 문제가 아니잖아 나의 세키구치는 이렇지 않아? 않..? 아메미야? 어헐???

요코? 키...키바? -0-0-0-0-0-0-0- 그...그나마 교고쿠도는 괜찮은건가?

아 몰라 다 미소년 미청년이 되어 버렸어(에노는 미소년이 아니라 미청년입니다 청년이요 청년 아니 중년이네 나이가 30이 넘었으니)

 

 

애니는 1쿨짜리로 보기에는 편하다. 하루 날 잡아서 한번에 몰아보면 딱 좋을 애니다. 짧아서 보는건 좋지만 저 난해한 내용이 1쿨에 쉽게 들어갈 수나 있을까도 걱정되기도 했다고. 교고쿠도 시리즈가 원래 말은 많은데 불친절하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바로 내뺀다. 그래서 말을 하면 할 수록 더 물음표만 늘어난다. 책이 그러하니까 애니가 더 곤란해진다. 몇장씩 연재하는 소설이 아니고서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그만이지만 몇파트씩 연재하는 애니는 다음 장면의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는 이상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기 힘들다. 막바지까지 아무것도 밝히지 않는 이런 불친절한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기에 복잡다단한 내용일지라도 2쿨로 가는건 위험성이 있긴 하다. 내용이 루즈해지기 쉽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1쿨이 되다 보니까 그것 또한 곤란하더라. 내용을 확확확 잘라먹어서 원작팬들이 원했던 부분이 상세하게 나오질 않는다거나 극중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거나 주요부분만 나오니 뭔가 줄거리 압축 요약을 한 느낌이라던가. 결국엔 애니도 불친절하게 탄생했다. 5편이 넘도록 이건 대체 뭐하자는 애니지요? 원작자팬들이야 이거 끝부분이 하이라이트라서 봐야 합니다 이런거라던가.

 

 

(1권의 하이라이트인데. 뭐지 왠지 건달같은 이 느낌은ㅠㅠ '그'가 움직인다는것이 얼마나 압도적인데)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만화같은 경우에는 원작의 작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인물들의 행동 동선에서 어느정도의 충족은 가져온다. 물론 여기서도 목소리가 어떻네 그러지만 원작에서의 분위기와 모션만 충분히 담고 있다면 합격선을 넘을 수 있다. 그것도 쉽지 않지만.... 그러나 소설은 조금 다르다. 소설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도 관건이거니와 무엇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해야 하는 소설의 특성상 같은 장면을 읽어도 머릿속에 떠올리는 상황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감동을 20을 받는 사람이 있을테고 50을 넘게 받는 사람이 있을테니까 이건 정말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망량의 상자같은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소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만일 책을 읽지 않고 애니를 봤다면 어쩌면 점수가 더 후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대신해서 책과 가장 흡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했던 기법이나 여타 다른 부분, 확실히 좋았다. 사전지식 없이는 무슨 내용인지조차도 짐작하기 힘든 대사들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좋았고 괴기 환상문학답게 짙은 명암과 화려한 색상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점도 역시나 매드하우스 답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가 감히 망량의 상자를 애니화 하겠다고 하겠는가. 매드하우스 정도나 되니까 하겠다고 하는거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허세가 되지 않는 연출. 아 역시나 저 정도나 되니까 저렇게 하는거구나 싶을 정도로.

망량의 상자는 귀신이 나오지 않는데도 공포소설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건 사람이 죽이니까 죽는거고 범인은 분명히 있고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추리소설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도 공포소설이다. 뒤틀린 인간군상으로 인해서 만들어낸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소설은 귀신, 즉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지만 망량의 상자는 인간에 대한 공포이다. 그 둘의 공포의 분위기는 다르다. 주온이나 알포인트 같은 귀신이야기는 얼어붙을 듯 차갑고 건조하지만 망량의 상자에서 공포란 흐물흐물하고 뜨거운 숨이 턱 막힐듯한 공포심을 불러낸다. 아 뭐랄까 덥고 축축하고 어두운 헛구역질 나는 곳에 홀로 서 있는 그런 기분 말이다. 한 리뷰어는 기분나쁜 공포라고 그랬던가.

내가 가진 이미지가 이러하니 클램프의 화려한 작화는 오히려 원작에서 느꼈던 이미지를 깎아먹는다. 세련되고 깔끔하며 군더더기 없는 작화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감상하기에는 더 좋을거다. 세상에 애니가 눈보신 하는 맛이라도 있어야지. 그런데 나는 슬프다. 너무 예쁘니까 분위기가 오히려 죽어버린다. 아니다 인물이 예쁜게 문제가 아닐거다. 전체적인 연출이 너무 예쁘고 환상적이라는거다. 한 작품을 두고 해석의 차이인건지. 짙은 명암은 극적인 반전을 효과적으로 연출한다. 하지만 그 짙은 명암 덕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오히려 반감되고 말았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걸 알기에 더 입맛이 쓰다. 어느 것이나 그러하듯 결론은 내 마음속 오롯히 있는 원작 망치기 싫으면 부산물들을 보지 않는 수 밖에.

 

 

(세키구치, 그냥 주인공 4인방으로 캡쳐했다. 귀찮아)

 

 

위에서도 말했듯 개개인의 감상이라 애니는 호평을 받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작화나 연출이나. 흠 잡을 데 없는 것을 아니까 개인적으로 더 슬플 따름이고. 무엇이 낫다 아니다 하는것은 직접 접해봐야 알 일이니 더 말할 순 없겠지.

 

 

(남자의 순정은 이렇게 짓밟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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