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모노노케

 

 

 

감독 : 나카무라 겐지

각본 : 이시카와 마나부 / 요코테 미치코 / 타카하시 이쿠코 / 코나카 치아키  

원화 : 하시모토 타카시

제작 : 토에이

 

 

* 모노노케의 정확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알아 낼 수가 없으나 괴 아야카시 중 화묘편 캐릭터 디자이너가 하시모토 타카시이기에 모노노케의 캐릭터 디자이너라고 짐작. 정확한 부분은 아님. 틀리면 제보바람.

 

 

 

 

모노노케에겐 전편이 있다. 괴 아야카시이다. 괴 아야카시까지 본 다음에 모노노케와 함께 리뷰를 써 볼까 했는데 아무리 구해도 구해지지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모노노케만 적기로.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해도 각각의 독립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고 싶은건 어쩔 수가 없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구해지면 그때 볼까나.

 

 

 

 

 

모노노케를 이야기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연출부분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작화인데 이 독특함은 무엇으로 말할까. 대체 이거 어디서 따온거지 라고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평면성의 구성을 생각해서 페르시아의 삽화들을 떠올리긴 했으나 엄연히 명암이 있고 원근감이 있는고로 그렇게 단순화시킨 그림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클림트에서 영향을 받은 면도 보이긴 하나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기조를 얻은듯. 일본의 대책이 서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감과 여백조차 색으로 가득 채워버리는 대담함을 가져오고, 거기에 한지를 오려서 붙인 듯한 느낌까지 더했다. 분명히 명암과 원근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묘사의 생략과 없어져버린 입체감에 화려한 색까지 더해져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기묘한 이야기들에 어울리는 기묘한 작화들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라임컷은 얼마 들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느릿느릿한 컷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전체를 아우르는 등장인물의 말투와 오프닝과 엔딩에 여닫이문을 사용한 모습까지 연극을 보는듯하지만 특이한 작화로 인해서 작품 내 인물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애니는 애니조차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내용을 보기 이전에 연출의 기묘함과 기묘함과 기묘함이 어우러져 이 작품 자체가 모노노케가 되어 버린듯하다. 너무 화려한 색에 질려버리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누에(鵼)는 모노노케의 5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독특한 연출을 하고 있다. 배경도 겨울이다. 무채색의 배경에 오로지 약장수만이 색깔을 얻었다. 등장인물들은 향을 맡음으로서 자신의 색깔을 얻는데 향을 맡을때만 그들은 생명력이 깃드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뿐 아닌 색-작화라는 연출을 통해서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화묘(化猫)편이 인간의 욕망과 불안심리의 묘사와 모노노케다운 연출까지 다섯편을 통틀어서 가장 빼어난 수작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연출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누에편이라 생각한다.

 

 

 

(어지간하면 붙여서 올릴텐데 작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풀샷으로. 둘 다 누에편.

누에편에서 색은 중요한 이야기 형태이다.)

 

 

 

앞서서 한 이야기를 또 하기에는 지면낭비이긴 한데 잠깐 더 이야기를 한다면... 일전에 일본의 요괴-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인간과 친숙하지만 서로 섞이지 아니하려 들고 인간에게서 태어나는 것들도 있는 반면 자연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들에게 요괴란 단순히 나쁜것, 해를 입히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닌 또 다른 존재라는 존재 가치를 부여한다. 분명 섞이진 않지만 인간과 같이 있는 생활의 한 부분, 요소 또는 그 자체. 일본의 다신의 신앙 풍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반면 모노노케는 우리나라의 귀신관과 상당히 닮았다. 우리나라 또한 민간신앙이 있긴 하지만 그 힘은 미약하고 단순한 생활 습관과 비슷하다 해야 할까 그 정도라서 우리나라에 깃들어 있는 신은 원념으로 탄생한 인간과 반대의 존재들이라. 원령의 탄생은 인간으로 말미암으나 인간과 있어서는 아니되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존재쯤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모노노케의 요괴의 관점 또한 인간과 함께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다. 그런 작품들도 꽤 있긴 하지만 가장 짙은 것은 모노노케 정도. 일본풍의, 철저하게 일본양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보기에는 가장 한국적인 내용들인 것이다. 한과 슬픔으로 만들어진 요괴들. 그들의 존재는 필연적이지만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슬픔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한으로 만들어진 요괴들은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슬픔, 오욕, 욕심 모두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들이다. 크건 작건 간에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인지라 인간들 스스로가 그 치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일까. 모노노케는 그런 인간들의 내면의 한을 슬프게 그려내고 있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요괴의 슬픔을 빌어 인간의 슬픔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슬픈건 한으로 태어난 요괴가 아니라 언제든지 요괴를 태동할 수 있는 인간들인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또는 자신의 욕망으로 본능을 태동하고 요괴를 낳는다. 치부를 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국은 모든것을 똑똑히 바라봐야만 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들인 것. 자신이 낳은 또 하나의 현실에서 괴로워하고 도망치지만 결국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그런 말이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어찌 할 수 없는 본능으로 끊임없이 요괴를 만들어낸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하듯 요괴라는 비뚤어진 인간의 내면을 고치기 위해서는 내력이 필요한 법. 약장수라는 직업이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요괴를 만들어내는 한 약장수는 없어지지 않겠지.

 

 

 

(아 그냥 이건 강아지가 귀여워서)

댓글 2개:

  1. 그림체가 굉장히 감각적인 애니죠

    본 적은 없는데 평이 괜찮았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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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퓨퓨비 - 2009/05/27 12:56
    애니에 공을 들였다는게 확 드러나. 그만큼

    신경을 썼으니 평이 좋을수 밖에. 1쿨, 5개 스토리를

    가진 애니가 각본가가 4명이나 붙었다면 말 다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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