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5일 월요일

봉하마을 분향소를 다녀왔다

 

 

 

 

 

어제 약속을 잡고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서 봉하마을로 출발했다. 늘 한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사람들 발걸음이 뜸해지면 한번 가 봐야지 생각했는데 역시나

머느님 말대로 다음에는 없나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빨리빨리 해야 할 거

같아요. 살아생전 한번 뵈야지 그랬는데 이런식으로 가게 될 줄은. 그게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고, 같이 간 지인도 같은 마음이었고. 멀면 멀다고 미루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미루고.

 

 

부산에서 봉하마을까지는 한시간 반 가량 걸리는 거리다. 먼 거리는 아닌데. 어제는 그렇게

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날씨가 어이없을 정도로 쨍쨍했다. 맑은 게 좋은건지 비 오는게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맑으면 맑은대로 슬프고 비오면 비 오는대로 슬펐겠지.

 

 

노통이 저에게 어떤 존재였나, 어떤 정치인이었나 라고 묻는다면 아직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20대 풋내기 시절 생전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지고 투표를 했던 분이

노통이었다. 어쭙잖은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름 이것저것 알아보고 고민한답시고

던진 표였는데 말이다. 그 후로 한 번도 표를 던진 것에 후회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고심하고

고심해서 던진 표였고 적어도 내가 후회할 정도로 그 분이 통치를 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야 정치적 성향이 가장 맞으신 분도 맞긴 하지만. 그런걸 떠나서 그 분의 그

삶만은 존경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 갈 수도 있는 거구나. 이런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리 생각했었다. 늘. 대통령으로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실망하는 정책을 내어

놓았을때도 여태껏 그 분이 살아 온 삶이 거짓이 아닌 이상, 마지막 한가닥으로 그래도

믿을 사람이기 때문에 믿어보자 생각했었다.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처음으로 그를 선택한 것이 후회가 물 밀듯 밀려왔다. 대한민국

주류지상주의 사회에서 비주류의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가시밭길이라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분이 걸어갔을 길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서야 그 길이 힘들고 괴로운

가시밭길이라는걸 깨닫는것도 우습기 짝이 없고 그래서 그 짐을 짊어지게 한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몹쓸.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심란해지고 심란해져서 주체가 되지 않았다. 분향소 곳곳에서

터지는 흐느낌과 오열을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붕 떠 버린 느낌만 들었었다. 마음 둘 곳이

없고 눈 둘 곳이 없고 그래서 그저 마을 저 너머의 산만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더랬다.

인간이어서 대통령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서 반대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동조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걸 떠나 그 분이 걸어간 그 삶 자체에 대해서 부정을 할 정도의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 이 분의 힘은, 진실은 이런 것이었나.

언제고 조용해지면 다시 봉하마을을 찾고 싶다. 이제는 정말 편안하게 있으실

그 분의 묘소도 찾아가고 싶다. 아직 그 분의 별세가 실감이 나지 않는데 그때가면

실감이 날까. 앞으로 조금씩 잃을 그 공허함만큼 실감이 날까. 세상에 지쳐서 희미해지진

않을까.

 

 

 

아침의 생난리법석을 멀거니 구경하다가 1시가 좀 넘어서 봉하마을을 떠났다. 오전보다

사람들이 배 이상 늘어난 느낌이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이승을 떠날 때 알 수 있다

그랬던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슬퍼하는 우리를 통해 그 분의 삶이 아주

헛되진 않았다 느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으니.

대통령을 퇴임하고 이제 편안하실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게 가슴에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는 가운데서도 한가닥의 위안이 되었다.

 

 

 

이제는 편안하실까.

대신 우리는 평생 안고 갈 상처 하나씩 받았다.

왠지 돌아가신 분의 유산 같다고나 할까. 바보같은 짓 하지 말라고 가슴에 새겨둔 그것.

 

 

 

집에 오는 길은 지쳐 나가떨어졌다. 바짝 서 있던 정신의 날은 왠지 무디어졌다.

 

 

 

 

짤방은 샤옹 카툰.

 

 

 

 

댓글 16개:

  1. 다녀오셨군요... 참으로... 마음아픈 일주일이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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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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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게 돌아가시고 날이 하루 하루 더해 갈 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기만 하고...

    우리가... 정말... 그 분 등을 떠밀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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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잘..보내드리고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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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aeHo Choi - 2009/05/26 05:18
    앞으로도 계속 아프고 허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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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Anonymous - 2009/05/26 09:17
    응응 그래그래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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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ShellingFord - 2009/05/26 14:36
    이젠 정말 편안하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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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arlnj - 2009/05/26 11:58
    살아계실 적 모습이 돌덩이가 되어서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것 같아. 사람의 죽음앞에 무슨 이성이 필요하겠니.

    이렇게 아프고 무거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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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띠용 - 2009/05/26 20:07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좀 나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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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저도 영결식 하기 전에 빨리 가봐야하는데..



    조기 달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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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퓨퓨비 - 2009/05/27 02:15
    갔다 오는게 힘들긴 한데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해져.

    우리가 오거나 가거나 이미 돌아가신 분이 무슨 상관이겠냐

    그냥 우리가 편해지려고 갔다오는거 같아. 자기위안으로.

    이기주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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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전 그냥 불편하게 지낼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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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Blueshine - 2009/05/27 07:27
    몸이 힘든건 별 거 아니지.

    먼 거리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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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퓨퓨비 - 2009/05/27 10:12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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