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6일 토요일

유럽 이야기 - 파리

 

 

Paris Story 8

2006. 06. 05 ~ 2006. 07. 02


 

 

(내가 날짜 잘못 적어놨다는걸 어제서야 깨달았다. 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 준거야? 응?ㅠㅠ)

 

 

 

야외 조각상들을 뒤로하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거실이다 거실. 거실 한켠에 인포를 두고 있는데 표지판에 한국어도 적혀 있었다. 그냥 환영. 1층에는 ... 어라 1층은 사진이 없는건지 2층사진이랑 섞인건지...;;; 예지랑 준경이 사진에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여튼 난 구분 못 하겠다. 그냥 작품만 간략히.

 

 

 

 

로댕의 작품중 가장 아름답고 관능적이라던 작품. 키스를 주제로 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관능적이고 섬세한 작품이란다. 작품명은 키스. 이 작품은 카미유 클로델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 그런다. 연인에게 바치는 헌사나 다름없으니 그토록 관능적이겠지.

 

 

 

신의 손.

 

 

 

로댕의 작품 중 유명하지 않은게 어디있겠냐만 유명한 청동시대.

로댕의 작품은 근육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함인데 이 청동시대는 그 생생함이 가장 잘 드러난다. 터질듯한 젊음이 어떻게 저 청동에 들어가 있을까. 로댕의 작품 중에 아이리스라는 작품이 있는데 에...그걸 대체 어떻게 만들어 냈을지...--aa 차마 찍지는 못하겠더라.

 

 

 

꽃모자를 쓴 소녀. 미술 교과서 표지로도 등장했을 이 작품은 로댕의 초년작중 하나. 빼어나게 아름답다기보다 풋풋하고 상큼하면서도 약간 우수에 어린 너무나도 소녀적이다. 로댕이 이 소녀에게서 받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작품의 모델은 부인...부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로즈 뵈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꽃꽂이. 양쪽으로 두개가 서 있는데 예쁘다. 눈길이 확 간다.

 

 

 

이브. 야외에도 있다.

 

 

 

대성당.

 

 

 

역시나 이브. 로댕은 같은 포즈의 작품들을 여러개 남겼다. 청동으로, 대리석으로 등등등등.

 

 

 

미술관에서 바라본 정원. 저 정원으로 들어가려면 1유로를 더 내야 한다. 정원이 아니라 공원같은 느낌이다. 싱그럽긴 한데 쥐죽은듯 고요하다. 이건 날씨가 너무 좋아서 문제인거다.

 

 

 

정원의 부분. 우골리노가 보인답.

 

 

 

슬슬 지쳐 나가떨어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로댕 미술관 내에서는 쉴 만한 곳이 그다지 없었고 그때까지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정원으로 내려가려고 하면서부터 슬슬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는거다. 끄응. 덥지만 정원은 내려가 보고 싶고 해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정원에 내려가서 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일어날 줄 몰랐다-_-;;;; 나으 정원 사진이 없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덥기도 더웠지만 일어나기가 무진장 힘드는거시여따. 우리 셋의 상태는 딱 저거였다. 으악 큰일이다.

아 물론 나 말고는 정원 사진 꽤 찍긴 했답.

 

 

 

정원 너머로 군사박물관이 보인다. 물론 가지 않았다--;;

 

앞 포스팅에서 로댕미술관을 가려면 앵벌리드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는 Varenne역에서 내렸다. 하하하하하--;;; 로댕미술관은 여기가 더 가까웁다.

 

 

 

이젠 안녕. 생각하는 그 분 머리 위에 참새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다음 코스인 오르셰로 이동이동

어제 괜찮은데서 못 먹었으니 오늘 로댕 미술관 갔다가 점심을 괜찮은데서 먹자고 했었다. 분명 그렇게 한 거 같은데 오르셰역에서 산 크로와상과 쥬스를 덜렁덜렁 들고 오르셰 앞으로 왔다. 아니 왜 이렇게 된거지? 여튼간에 왔는데 경악했다. 태양이 가장 강렬할 12시 전후, 오르셰 앞은 벤치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던 것이다. 여태껏 미술관을 생각하면서 설마 앉아서 먹을만한데 없겠냐 이랬는데 진짜 앉아서 먹을만한데가 없었다. 허헐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벤치는 있었는데 직사광선 바로 밑. 아주 따땃하게 달구어져서 앉고 싶은 생각이 싸악 사라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앉을데도 없다, 먹을데도 없다 이를 어쩌지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잡은 곳은 오르셰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늘 한 구석. 여자 세명이 처량하게 계단 구석에 앉아서 빵조각을 뜯는 모습은.... 여기가 우릴 아무도 못 알아보는 유럽이니까 할 수 있는 짓이지. 이것도 나름 추억이잖아?

 

오르셰는 Musee d'Orsay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올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빵을 뜯고 있으니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쪼르르 날아왔다. 무엇을 갈구하는지 안 봐도 훤하다--;;; 크로와상이라 주위에 빵부스러기가 널려 있었는데 겁도 없이 와서 주워 먹기 시작했다.

 

 

 

어쭈 이것봐라?

 

 

 

빵부스러기를 던져주니까 냉큼 받아먹는다. 아 우리나라에 비둘기가 있다면 유럽에는 참새가 있었구나.

 

지하철역에서 산 빵이라서 별 기대도 안 하고 먹었는데 이거 정말 맛있었다. 점심시간 즈음이니까 배가 고플 시간이긴 했지만 이후에 유럽 여기저기 다녀도 이처럼 맛있는 빵은 먹어보질 못했다. 특히나 독일에서 먹은 빵은 좀 많이 쉣-_ 이어서 이 빵이 몹시도 그리웠다.

 

 

 

빵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오르셰 안으로 들어왔다. 오르셰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럿인데 박물관패스권을 가지면 줄 서지 않고 간단하게 들어갈 수 있다. 아니면 줄 서서 표 끊어야 하거든. 역시나 시간 아끼는데는 꽤 좋은듯.

 

입구에서 팜플렛을 들고 뚤레뚤레 들어가면 계단이 보인다. 거기를 올라가면 오르셰 미술관인 것이다. 오르셰는 파란만장한 미술관이다. 호텔도 되었다가 역도 되었다가 지금의 미술관으로 변신. 내부는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지만 역시 곳곳에 역사라는 티가 난다. 루브르 박물관이 중세부터 근세(정확하게 말하면 로코코미술)까지 전시가 되어 있다면 오르셰는 근대 미술 - 인상파에서 현대 미술 - 을 모아 두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오르셰에 그림을 기부한다.

오르셰 미술관 자체는 명성에 비해서 그다지 크지 않다. 넉넉하게 3, 4시간 정도면 미술관을 속속들이 다 볼 수 있다. 뭐 그렇다고 오르셰가 루브르보다 가치가 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오르셰에 들어서면 저 시계가 먼저 보인다. 역시나 역사의 시계였을까. 찍고나니 뿌듯한 사진. 엽서같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오르셰.

회랑(이라고 불러도 되려나?) 옆으로 cell들이 있고 그 안에 그림들이 잔뜩 있다. 회랑은 조각상들로 가득가득. 시계가 있는 난간에서 오르셰를 찍으면 저런 모습이 나온다. 사람들로 왁자왁자 하나 그래도 역시 우리가 갔을 때는 한산했던 편. 루브르에서는 3층에서 1층으로 거꾸로 내려왔었다. 그 덕에 상당히 편하게 관람을 했었더랬다. So~ 이번에도 거꾸로 내려왔는데 루브르도 미로긴 하나 오르셰는 완벽하게 미로여서 내려가다가 길 잃을뻔 했다. 거기다 올라가는 계단 찾느라고 온갖곳을 다 헤맸는데 어머나 세상에 3층까지 올라가고 보니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OTL 다리 끊어지는 줄 알았는데;;

오르셰는 1층에서부터 올라가도 된다.ㅠ_-

 

그래도 유수의 작품들은 대부분 3층에 있었다. 오르셰는 1층과 3층이 진기명기거든.

 

 

 

조르쥬 쉐라의 서커스

이건 뭐 년도도 없고 그림에 대해서 정보도 없고....;;;

쉐라는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쉐라의 그림은 이것보다는 그랑자데 섬의 오후가 더 유명하다. 단지 내가 기억에 남는 그림이 서커스라서 이걸 올린거지. 쉐라와 고흐는 같은 시대를 살다 간 화가지만 그림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쉐라는 분해를, 고흐는 재구성을 했고 그 결과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쉐라의 그림은 움직이는 장면조차 정지한 것 같다.

 

 

 

Arearea

1891

 

 

 

타히티의 여인들

(was gibt's Neues, Parau api)

1892

 

 

백마

(Der Reigen der kleinen Bretonninen)

1898

 

이상은 말이 더 필요 없는 폴 고갱의 그림이다. 고갱의 초기 그림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음영에 의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나 고흐와의 불안정한 관계와 가족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환멸을 느끼고 원시생활에 매료된 나머지 타히티로 훌쩍 떠난다. 타히티로 떠나기 전에도 그림은 그의 원시생활의 동경으로 인해 토속적이기 시작했는데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은 그의 대표작들이 되었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그는 문명세계의 환멸과 원시생활의 동경으로 타히티로 떠났으며 그의 작품들은 그 원시의 강렬함과 건강함으로 구축되어 있다 하는데 사실 다른 의견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타히티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은 타히티에서조차 외지인이었으며 그의 그림은 그 외지인이 본 타히티가 아니겠느냐. 문명도 원시도 완전히 안고가지 못했고 떨치지 못했던 그는 그의 단짝 고흐만큼이나 외롭게 살다 간 인물일지도.

 

 

 

이거 암만봐도 모네의 그림인데 왜 정보가 없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보고서도 지나친걸까. 제작 년도는 1890년대인데 역시나 뒤져도 안 나온다--;;;

 

 

 

수레국화

(Chrysanthemes)

1870

 

초기라고 하면 웃기겠지만 초기의 모네의 그림은 상당히 정밀하다.

 

 

마가렛의 초상

(Portrait de modele ou Margot)

1878

 

모네와 함께 인상파의 거장 르느와르의 그림이다. 모네의 그림보다 훨씬 유하고 순하다는 인상을 준다.

 

 

 

도시에서의 무도회

(Danse a la ville)

1883

르느와르

 

 

 

정물

(Le vase bleu)

1885-1887

 

정확하게 말한다면 푸른화병이겠지만.

세잔은 정물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정물은 상당히 불안정하고 피상적이다. 수많은 구도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구도를 그렸는데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그림은 추상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그림은 정물이라기보다는 재창조된 것들이니까.

 

 

 

 

그런고로 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린다.

 

 

 

정오, 낮잠(밀레 모작)

(Meridian or siesta, after Millet)

1889-1890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침실

Van Gogh's bedroom at Arles

1889

 

 

 

댄스

(La salle de danse a Arles)

1888

 

이상 고흐

 

 

사진 순서가 어째 엉망으로 업로딩이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작가가 섞여서 길게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고로 나머지는 내일!

 

 

 

 Paris Story NO.9

 

 

댓글 10개:

  1. 우와~

    멋진 그림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괜히 저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는 듯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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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퍼블양 - 2009/06/06 05:16
    허접정보에 그런 칭찬을 주시니ㅠㅠ 제가 더 감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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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와. 사진만 봐도 즐겁네요..^ㅂ^

    그림도 멋지지만, 오르셰 그 자체도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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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hris - 2009/06/06 19:46
    정말 멋진 곳이죠+_+bb

    가 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고 갔다 오고서도 후회없는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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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 전쟁관에 내 흔적을 남기고 왔어.ㅋㅋㅋ



    빵은 프랑스가 무지 맛나더라. 아무래도 밀의 원산지 이런것 땜에 그럴거라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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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ueshine - 2009/06/07 07:31
    난 힘들어서 근처에도 안 갔어 헥헥헥

    프랑스빵 진짜 맛있지....... 반했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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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꽃모자를 쓴 소녀.. 눈이 움직일거같음.. 으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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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퓨퓨비 - 2009/06/08 13:09
    그렇게 무섭진 않음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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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구정화 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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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백조트래핑 - 2009/06/10 21:54
    재미있게 봐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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