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유럽 이야기 - 파리

 

Paris Story 9

2006. 06. 05 ~ 2006. 07. 02


 

 

 

 

앞에 블로깅에 이어서 주욱

이번 블로깅은 진짜 재미없다 내가봐도-0-; 어서어서 지나가야지

 

 

 

오베르의 교회

(L'eglise d'Auvers)

1890

 

고흐의 최후의 작품. 마지막 작품이 교회라.... 그는 죽음으로서 안식을 얻었을까.

 

오베르였던가. 실제 가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데. 고흐가 살았던 아를도 가 보고 싶지만 오베르도 몹시도 가 보고 싶었다. 아니 그냥 남프랑스를 주욱 둘러보고 싶었다고. 니스만 핥고 온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아니 니스도 제대로 못 보고 왔지만. 여행욕심은 가면 갈 수록 커지는거라 거기서 1년을 살아도, 10년을 살아도 가 보고 싶은 곳이 계속 생길 것 같다. 유럽의 그 많은 나라들을 한달이라는 기간에 다 보고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겠지. 그러니까 가고 나서도 또 가고 싶고 또 가고 싶고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꼬르드빌의 이엉집

(Chaumes de Cordeville, Auvers-sur-Oise)

1890

 

 

 

자화상

(Portrait de l'artiste)

1889

 

정확하게 말한다면 생 레미에서의 자화상이겠지만. 반 고흐를 보고 있노라면 뭉크가 계속 떠오른다. 어린시절부터 가까이 접했던 주변인들의 죽음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계속 있어야 햇던 뭉크. 그의 정신병은 그에게 희대의 걸작을 안겨 주었으나 정신병이 낫자 그는 더 이상 걸작을 그려낼 수 없었다고 한다. 고흐가 정신병이 나았다면..... 역시나 만약이라는건 없겠지만 고흐의 작품들 대부분이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을때 나온 것들이라는것을 생각한다면.

사진이라는 존재는 미술가에게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도록 강요했다. 어떤 이는 순간의 반짝임을 그렸고 어떤 이는 빛의 오묘함을 그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토록 강렬한 그림도 남겼다. 고전의 대가들은 예술을 돈 이상의 것으로 이끌어기도 했으나 역시나 돈에서 자유로워진 예술은 가장 실험적이고 순수함을 남긴다.

 

 

 

일본식 다리와 수련

(Le Bassin aux nympheas, harmonie rose)

1900

 

모네는 연작을 많이 남겼다. 이 일본식 다리 시리즈도 그렇고 수련도 그렇고. 르왕 대성당이나. 같은 주제로, 같은 소재로 그림을 남겼다 하더라도 같은 그림은 없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그림을 그렸던 시기에 따라 그림은 제각각이다. 수련 시리즈와 일본식 다리 시리즈는 그가 지베르니에 살면서 그렸던 그림들. 지베르니의 정원은 그 덕에 성지순례장소가 되었다고.

 

 

 

우산을 든 여인

(Title Woman with a Parasol)

1886

 

우산을 든 여인도 연작이다. 그림이 3점이 있는데 그 중 두 점은 오르셰에, 나머지는 워싱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르셰에 있는 두 점의 그림은 상당히 유사하며 그림을 그려진 년도도 같다. 인상파 미술이 살롱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저 대담한 묘사 덕택인데 저 그림도 눈코입이 생략된 덕에 욕을 바가지로 드셨다고. 오르셰에 있는 그림은 오슈데 부인을 모델로, 워싱턴에 있는 그림은 까미유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르왕 대성당

(Rouen Cathedral, The Portal in the sun)

1892

 

모네의 초기작들은 사실적이고 정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당장 밑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초기에도 안 그랬냐만은 후기로 가면 갈 수록 시간에 따른 사물의 변화-더 정확하게 말하면 색채의 변화에 집중했었다. 사진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더욱더 사실적이고 자신의 색깔을 내도록 강요아닌 강요를 했으며 사진이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색의 찰나를 나타내고자 노력했었다. 인상파들의 그림은 추상적이게 보일지 모르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실적인 그림들이었다.

 

 

 

이 그림도 좀 가르쳐 줄 사람;;

어째 한 포스트에 한개씩 이런 그림이 나오는거 같은게.

 

 

 

점심

(The Luncheon)

1873~1874

 

 

 

수련

(Nymphéas)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작품. 그런데 정작 작품년도가 나와있질 않다-_-;;; 오르셰에 있는 수련은 유명하지도 않다 이건가. 모네는 지베르니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수련 연작을 남겼다. 지베르니의 그림들 대부분이 물과 관련된 그림인데 물의 반짝임과 색채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한다. 지베르니의 수련과 다리는 후기로 가면 갈수록 형채가 사라지고 색만 남은 이른바 추상적으로 변하는데 그건 모네가 시력을 잃어버린덕에 사물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데 사물의 형태를 잃어버린 추상화의 시초가 된다.

 

 

 

아이리스가 있는 지베르니 정원

(Le jardin de l'artiste à Giverny)

1900

 

 

 

갈레트의 무도회

(La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인상파 미술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인상파 화가들의 특징을 한데 뭉퉁그려서 말하기는 힘들다. 그 중 르느와르의 그림은 인상파라고 하기에는 강렬하지도 않고 어디가 인상파라 불리는 것일까 의구심도 들 만 하다.

 

 

 

알퐁시네 푸르네즈
(Alphonsine Fournaise)
1879
 

 

 

독서하는 소녀

(La Liseuse)

1886

 

 

 

그네

(La Balancoire)

1876

 

르느와르또한 초기작품과 후기작품이 판이하게 다른 화가 중 하나이다. 인상파 화가들 자체가 실험정신에 입각한 화가들이다 보니 대부분이 초기와 후기의 작품성히 달라지긴 하지만. 르느와르의 초기는 쿠르베라던지 마네라던지 다른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의 작품답지 않게 날카로운 느낌도 없잖아 있으나 이탈리아 여행 이후 그의 그림들은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인체의 구도를 중시하게 된다. 르느와르는 앵그르의 영향도 받았는데 아마도 비슷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찾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때우겠음. 그렇게 화풍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의 가장 기본은 '행복'이었다. 한국에서 전시한 르느와르의 작품전의 부제도 행복을 그리는 화가였으니. 그는 그림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밝고 경쾌한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만큼, 그는 여인들도 많이 그렸는데 르느와르는 여인들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40세가 넘어서서 여인들의 나신을 많이 그렸는데 그녀들의 유연하고 풍만한, 부드럽고 따스한 나신들에게 매료되었기에 말이다.

빛의 표현 기법이나 그런건 둘째치고라도 그가 그린 초상에서 인상파라 불러야 할지 갸우뚱한 부분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 당시, 그의 작품 또한 신랄하게 까였다. 사람들의 눈, 코, 입이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면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멀리서 얼굴은 본다면 형체가 뚜렷하지 않고 뭉퉁그려 보이는걸 당연하다 생각하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몇쳔년동안 확실한 윤곽의 그림들만 봐 왔기 때문에.

 

 

 

 

요람

(Le berceau)

1872

 

모리조는 인상파 유일의 여류화가이다.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였으며 마네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미로움이 작품속에 아우러져 있다. 그녀의 대표작인 요람은 그녀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성애의 발로라고.

 

 

 

바티뇰의 아뜰리에

Un atelier aux Batignolles
1870
 
위 그림은 인상파의 아버지 마네를 위해서 앙리 팡당-라투르가 헌정한 그림이다. 바티뇰은 인상파의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후일 인상파로 불리는 그들은 그 당시에는 마네파라 불렸다.
 

 

 

오르셰 외부 시계의 뒷면. 사실 보면 별 거 없는데 괜히 사람들이 한번쯤 기웃거리는 곳이당.

 

 

 

 Paris Story NO.10

댓글 13개:

  1. 이런 경험을 했던 니가 부러울 뿐.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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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띠용 - 2009/06/22 20:39
    뭔가 미술관도 분위기에 한몫하나봐요.

    본래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보면 왠지 감동이 더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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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술 되게 좋아하나보다..

    우린 남자들끼리 돌아다녀서 이런것에 대한 감흥이 크게 없었나봐..



    르브루, 오르셰 다 그냥 저냥 보고 지나갔어.ㅋ



    대신 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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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ueshine - 2009/06/22 23:10
    ㅇㅇ

    같이 갔던 애 한명은 미대 다니고 난 미술 좋아하고.

    그래서 이런거 주욱 둘러보는거 잼나더라.



    우린 술은 음료처럼 가볍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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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ueshine - 2009/06/22 23:10
    제대로 말해야죠...음료수나 술이나 마셔도 똑같다고; (어짜피 술이 안취하면 결국 음료수 아님?)



    그건 그렇고 이번 포스팅은 예솔과 역사 강의 보는 것 같네요;;;한주 강의 분 나왔어요...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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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lueshine - 2009/06/22 23:10
    내가 술을 마신다는건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신다는 뜻임

    엣헴



    저거 적는것도 은근히 일이야 그래서 귀찮아-ㅅ-;;;나도 어서 지나갔음 좋겠어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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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흐규흐규 모네 흐규흐규 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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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직접 보면 보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서도 그림의 분위기가 완전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죠.

    저런 것들을 직접 보고 오셨다니 정말 부러울 뿐이에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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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Akkie - 2009/06/23 12:34
    흐규흐큐 다 좋아 휘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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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hris - 2009/06/23 15:24
    전시물이 되어 있는 전시실이나 그 상황에 따른 분위기나

    그런게 한몫하는 거겠죠? 한국에서 보는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묘미가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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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trackback from: 프랑스 파리 2008 #1: CDG@RER B
    # 드골공항의 RER B station (Aeroport Charles de Gaulle) 첫느낌은 지저분, 찌린네, 어수선함 속에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우리도 너무 우리나라 땅에서 외국인 눈치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by 복면사과 ( krarnie@gmail.com ) 200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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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trackback from: 프랑스 파리 2008 #2:뒷골목 @Luxembourg
    # 파리의 뒷골목도 재개발을 앞둔 서울 아파트 단지처럼 주차지옥이구나. 한번 주차하면 차 빼기 싫겠다. by 복면사과 ( krarnie@gmail.com ) 200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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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trackback from: 프랑스 파리 2008 #3:밤거리 @Luxembourg
    # 밤 11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파리는 초저녁같이 느껴졌다. 파리의 토요일밤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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